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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과 리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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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과 리액션

2020. 1. 7

디지털 치매 때문인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말하고 싶은 얘기가 떠올랐는데, 상대방이 하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그 말을 하려고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상대방에게 말할 시간을 주지 않고 혹은 하던 대화의 맥을 끊고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놓기 일쑤다. 이런 현상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사이 일수록 더 자주 나타난다. 드라마 시나리오에서 대화를 쓸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작법 중 하나가 ‘액션과 리액션’이다. 등장인물 한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서는 안되고, 한 인물이 대사를 던지면 상대 인물이 그 대사에 반응을 하면서 다이알로그가 형성되는 것이..(중략)

설은아 작가의 작품을 보면 1980년대 모델형의 전화기 9개가 줄 맞춰 놓여있다. 수화기를 들면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수화기를 든 익명의 사람이 대화하고 싶었던 인물인 냥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한다. 남편에게 삐쳐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는 아주머니의 고백, 엄마에게 무뚝뚝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남학생의 목소리… 아직 전하지 못한 속마음을 부재중 음성 메시지 형식으로 남긴 프로젝트에 취합된 3만6500여통의 부재중 전화다.

이 음성들을 듣고 나면 관람객이었던 나도 평소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관객의 마음을 예견했는지, 바로 옆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설은아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줄고 있는 소통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중략)

이 두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은 설계자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액션과 관객 겸 참여자들의 리액션으로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 인터렉티브와 소통은 콘텐츠 업계에서 화두였다. 넷플릭스의 <블랙미러:밴더스내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진보한 상호작용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공감하지 못했던 것은 기술적인 진보에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본 두 작품은 기술 발전이나 스토리텔링 테크닉의 성장이 아닌 소통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았다.

소통하자는 말, 참 진부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미술 작품도 소통의 본질까지는 다가가지 못했다. 전화기 부스에 설치된 전화기로 음성 녹음을 할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직접 전달하면 될 일이다. 때마침 전시회에 같이 간 동거인에게 쑥스럽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해본다. “고맙고 사랑해.” 이런! 액션이 갔는데, 리액션이 없다. 이래서 다이알로그의 완성이 어렵고, 대화와 소통이 항상 우리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는 것 같다.

PD저널_ 이은미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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